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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하는 봄날의 음식들...

08.03.31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자연과 함께 하는 봄날의 음식들...

음력 3월이 다가온다. 따뜻한 땅의 기운을 받아 움트는 새싹들의 활기찬 행진이 느껴진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양수(陽數)가 두 번 겹쳐지는 날은 특별한 의미를 두어 속절(俗節)로 삼았는데, 음력 3월 3일 또한 그렇다. 이날을 삼짇날이라 한다. 삼짇날은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날로, 산과 들에 흐드러진 꽃을 보며 꽃놀이를 하였다. 꽃이 피어나니 나비가 날아들고, 이 때 만난 나비의 색으로 일년동안의 운을 점치기도 했다. 호랑나비나 노랑나비를 보면 운수가 좋을 징조로 생각했고, 흰나비를 보면 상복을 입을 운수로 여겨 매사에 조심하였다고 한다. 삼짇날의 다른 이름으로 삼삼일(三三日), 삼중일(三重日), 삼진일(三辰日), 상사일(上巳日), 원사일(元巳日), 답청절(踏靑節), 계음일(禊飮日) 등이 있다.

삼짇날의 유래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도성 풍속에 산이나 계곡에서 놀이하는 것을 화류(花柳)놀이라고 한다. 이것은 상사일(上巳日)에 답청(踏靑)하는데서 유래한 풍속이다.”라고 하였다. 즉 경치 좋은 곳에 가서 꽃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풍속이었다. 이것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어 「조선왕조실록」(세조 07.03.06 丁未, 연산 05.03.03 壬戌 등)에 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 놀이로 남자들은 물론 특히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이 봄을 맞아 모처럼의 외출을 즐길 수 있는 꿀맛 같은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신윤복의 에는 그 봄나들이의 흥겨움이 절로 묻어나는 듯하다. 큰 갓을 쓴 양반네는 기생들에게 기꺼이 말을 내어 주고, 심지어 말구종의 벙거지까지 빼앗아 쓰고 젊은 기생의 말구종을 자처하고 나설 만큼 가슴도 진달래 빛으로 이미 물들어 버렸나보다...
「송사(宋史)」에 “고려에는 상사일의 쑥떡을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친다.” 하였고,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쓴 「조선부(朝鮮賦)」에는 “3월 3일에는 쑥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서 쪄서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쑥떡이라 하였는데, 중국에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봄떡은 꿈에만 봐도 살찐다.’와 ‘봄떡은 들어앉은 샌님도 먹는다.’는 속담처럼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는 춘궁기로 먹을 것이 궁하였을 것이니 이런 풍류는 특권층에서나 즐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겨우내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농번기를 앞두고 하루쯤 한가로이 봄날을 즐기는 여유를 빼 놓을 순 없었던 것이리라.

전라도에서는 삼짇날 조상에게 시사(時祀)를 지냈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새 옷을 입히고 손에 실을 매 주기도 했다고 한다. 삼짇날 제비를 맞이하기 위해 제비집을 손보기도 하였는데, 제비가 식구를 불리는 수만큼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하니 얼마나 정성을 쏟았겠는가?

「동국세시기」에는 삼짇날의 시식(時食)으로 화전(花煎)과 화면(花麪)이 기록되어 있다. 그 외 쑥떡, 탕평채, 산병(散餠, 곱장떡), 고리떡[環餠] 등도 먹었다.

화전은 소금을 넣어 간을 한 찹쌀가루를 무르게 익반죽하여 동글납작하게 빚은 후 진달래꽃으로 수를 놓는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뜨거워지면 빚어 놓은 반죽을 놓고 지져낸다. 잘 익어 희고 투명한 떡 위에 진분홍의 진달래꽃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니, 화전을 먹는 것만으로도 봄을 오감(五感)으로 느끼고도 남음이 있다. 허균(許筠)은「도문대작(屠門大爵)」에서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로 화전을 즐긴다고 하였으니, 과연 조선팔도의 진미(珍味)를 줄줄 꿰어 낸 풍류객(風流客)다운 이야기이다. 「순오지(旬五志)」에서 임제(林悌)는 “작은 개울가에 돌을 고여 놓고 솥뚜껑을 걸어 기름을 두른 후 쌀가루를 얹어 두견화를 지지네. 젓가락으로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한해 봄빛이 배속에 전해지네”하여 진달래화전의 묘미를 당대의 이름난 문인(文人)답게 표현했다. 화전은 꽃지지미 또는 꽃부꾸미라고도 한다. 그냥도 먹지만, 잔치의 고임떡 위에 올려 웃기떡으로도 쓰였다.

진달래꽃

화면(花麪)은 꽃이 나는 계절에 꽃잎에 녹말을 묻혀서 익힌 것을 첫서리를 맞아 잘 익은 오미자(五味子)를 따 두었다가 물에 우려내어 처녀들의 다홍치마 같은 고운 빛이 도는 오미자국에 띄워 계절감을 즐기는 음청류(飮淸類)이다. 다른 이름으로 수면(水麵)이라고도 한다. 진달래꽃술을 따 버리고 녹두가루를 살짝 묻혀 끓는 물에 데쳐 내거나, 물에 녹두가루를 묽게 타 얇은 그릇에 놓아 뜨거운 물에 익혀서 썰면 투명하고 고운 국수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빛깔 고운 오미자국이나 꿀물에 타서 먹으면 몸에서 절로 봄 향내가 나는 듯하였을 것이다.

진달래꽃은 따서 말렸다가 술을 담구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두견주(杜鵑酒)이다.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다 죽게 되었을 때 열일곱 된 그의 딸이 꿈속에 나타난 신선(神仙)의 가르침을 받고 만든 가향주(加香酒)로도 유명하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진달래가 필 때 멥쌀과 찹쌀을 씻어 각각 지에밥을 지은 후 물을 뿌려두고, 꽃술을 없앤 진달래를 메밥 한켜, 찰밥 한켜, 진달래꽃 한켜로 번갈아 놓고 맨 위에 메밥으로 덮어 2-3주일 지난 뒤 술독에 불을 지펴 불이 꺼지지 않으면 다 된 것이라 하였다. 새봄을 기다린 그리움을 진달래에 담아 술로 간직했던 우리 조상들의 풍류가 가히 수준급이다.

탕평채는 녹두로 만든 청포묵무침이다. 탕평채(蕩平菜)는 그 이름이 영조 때 당쟁을 없애기 위해 펼친 탕평책(蕩平策)에서 연유하였다고 전해진다. 「상서(尙書)」에 ‘무편무당(無偏無黨) 왕도탕탕(王道蕩蕩) 무당무편(無黨無偏) 왕도평평(王道平平)’이란 문장에서 ‘탕평(蕩平)’이란 이름을 빌어 ‘서로 고루 섞여 조화로움’을 강조한 것이란다. 만드는 법은 녹두의 껍질을 타 개어 물에 불린 후 곱게 갈아 앙금을 가라앉힌다. 그 앙금에 물을 부어 나무주걱으로 오래 저으면서 묵을 쑤어 식히면 된다. 묵을 쑬 때 찬물을 부어 쑤어 그 빛이 희면 청포묵, 치자물로 쑤어 그 빛이 노랗게 되면 황포묵이라 한다. 이렇게 쑤어 굳힌 묵은 채를 썰어둔다. 숙주는 거두절미하여 손질한 후 끓는 물에 데쳐내고, 미나리는 줄기만 숙주길이 만큼씩 썰어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낸다. 쇠고기는 살코기를 곱게 채 썰어 갖은 양념으로 무친 후 볶아두고, 달걀은 황백을 나누어 지단을 부쳐서 채를 썬다. 청포묵, 쇠고기, 숙주, 미나리, 지단을 초간장 양념으로 무쳐서 그릇에 담고 김가루나 실고추를 얹으면 된다. 청포묵의 야들야들함, 미나리와 숙주의 아삭함, 달걀과 쇠고기의 구수함이 어우러져 다양한 촉감과 개운하고 새콤한 맛을 내니 혀가 즐겁다. 쇠고기와 김의 검정색, 숙주와 청포묵의 흰색, 황지단의 노란색, 미나리의 푸른색, 실고추의 붉은색이 어울려 오방색(五方色)을 이루니 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갑론을박(甲論乙駁)하기를 일로 삼은 붕당인(朋黨人)들은 이 탕평채의 조화로운 빛깔과 맛이 주는 의미를 과연 얼마나 알았을까?

삼짇날 화전놀이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지금도 봄나들이를 즐긴다. 또 지역에서는 저마다의 꽃축제가 한창이다. 매화, 산수유, 진달래, 벚꽃, 철쭉... 그 꽃놀이에 우리 조상들의 여유로운 풍류와 자연이 준 제철음식을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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