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음식문화 안내 › 전북 음식 이야기

소나무의 축복, 송화다식 · 송화주 · 송기떡

08.04.29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소나무의 축복, 송화다식 · 송화주 · 송기떡

“가는 봄 솔숲은 지금 송화가루 해산 중”이라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우리들 부모님의 모습처럼 그저 늘 말없이 자리를 지키던 소나무가 일년 중 단 한차례, 지금 새물을 흠뻑 머금고, 산고(産苦)를 겪으며 노오란 안개를 뿜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때문이다.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 꽂혔던 솔가지에서부터 궁궐과 왕릉의 나무로 쓰였던 소나무... 궁핍했던 시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어 민생고(民生苦)의 해결사이길 자처하면서도 성삼문(成三問), 윤선도(尹善道), 김정희(金正喜), 이인상(李麟祥) 등의 시문서화(詩文書畵)에는 절개(節槪)와 충절(忠節)의 상징으로 한국의 정서를 대표하기도 하였다. 유독이 한국인들은 소나무를 의인화하기도 한다. 벼슬을 받은 속리산의 정2품송이 그렇고, 유산을 물려받은 예천의 석송령(石松靈)이 그렇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나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하겠다.

소나무는 음식으로도 우리민족과는 많은 인연이 있다. 소나무의 솔잎, 솔방울, 송순, 송화가루, 송피 등을 이용하여 만든 죽, 떡, 다식, 매작과, 강정, 차, 술, 화채 등은 이미 친숙하다. 소나무가 주는 음식을 살펴보자.

「신간구황촬요(新刊救荒撮要)」에는 ‘솔방울의 잣과 송진과 뿌리와 껍질이 모두 구황에 좋으나 솔잎이 가장 좋다. 솔잎은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배가 고프지 않게 한다.’하였다. 또, 솔잎가루를 내는 법과 솔잎가루 3홉과 쌀가루 1홉과 느릅나무 즙 1되를 섞어서 쑨 솔엽죽(松葉粥)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흉년에 대비해서만이 아니라 풍년에도 병을 치유하고 장수하게 하여주니 오곡(五穀)이나 고량진미(膏粱珍味)보다 낫다.’하여 솔잎으로 쑨 죽이 구황뿐만 아니라 보양식으로도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추석에 송편을 만들 때는 솔잎을 켜켜로 놓고 찐다. 솔잎과 송편을 번갈아 놓고 찌면 송편이 달라붙지 않아 제 모양을 유지할 수 있고, 떡에 솔잎이 새겨져 절로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송편에 솔잎의 향이 배어 향긋하고 맛있는 송편이 되고, 솔잎의 항균물질은 미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여 송편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천연의 방부제 역할을 한다.
송기(松肌)는 소나무의 속껍질이다. 소나무의 거칠고 딱딱한 겉껍질은 버리고 속의 정갈한 껍질만을 삶아 두었다가 떡의 재료로 쓰는데 매혹적인 자줏빛이 특징이다. 하지만 송기는 조선시대 기근이 심하여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해야 할 시점, 그 선두주자에 섰던 대표적인 구황식품 중의 하나였다. 소나무의 속껍질은 물에 삶으면 삶을수록 자줏빛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연해질 때까지 삶은 후 방아를 찧어 찹쌀가루와 섞어 덩어리가 될 때까지 두드려서 떡을 만든다. 송기송편․송기개피떡․송기주악으로 탄생되면 고운 빛깔 때문에 웃기떡으로 자주 쓰였다.

송화(松花)가루는 1년에 4월~5월 사이에 10여일만 채취할 수 있다. 이맘때쯤엔 송화가 피어오르는데 따뜻한 곳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세상을 덮는다. 이 송화가루에는 칼슘, 콜린, 항산화비타민 등이 풍부하여 고혈압 및 치매효과, 노화방지, 감기예방 등에 효과가 있고, 꽃가루는 방향성이 있어 아로마 요법과 같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5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다식은 송화다식(淞花茶食)이다. 송화가루에 꿀을 넣고 버무려 다식판에 박아 내놓으면 때깔 고운 노란 빛의 송화다식이 된다. 다식 중 그 고운 빛깔과 향 때문에 고조리서(古調理書)에 가장 많이 기록이 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송화를 고운 체에 쳐서 석청으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는다. 송화는 다 피면 말라 떨어져 거두기가 어려우니 피려고 할 때 가지째 따서 깨끗한 돗자리에 펴 놓고 볕을 쬐면 저절로 떨어진다. 다섯 잎사귀 송화가 제일 좋은 것은 색은 약하나 맑은 향기는 갑절이나 되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 송화다식과 어린 잎으로 만든 차(茶)를 우려 마시면 어느 신선놀음이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소나무 사진송기떡 사진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다. 심폐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기(氣)를 보충하며, 풍(風)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고 하였고, 「당본초(唐本草)」에는 ‘송화는 솔잎, 송지, 송피보다 약효가 승(勝)하다.’고 하였다. 송화가루가 날리면 옛날 우리 조상들은 겨우내 꽁꽁 닫아두었던 간장, 고추장, 된장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송화가루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 염전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송화가루를 입어 최고의 상품으로 꼽힌다. 또한 술항아리에도 술이 과하게 익어 넘치거나 나쁜 균이 끼는 것을 바로 이 송화가루가 막아 술의 숙성을 도왔다.
우리의 고장 모악산 자락의 수왕사(水王寺)에는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의 비주(秘酒)가 있다. 1300여년의 세월을 넘어 수왕사의 주지스님에게서만 전승되어 온 이 송화곡차는 현재 12대 전승기능보유자인 벽암스님에 이르고 있다. 벽암스님은 송화백일주로 대한민국전통식품 명인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술을 빚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물이다. 수왕사라는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곳 바위틈에서 솟는 물맛은 최고란다. 술 만드는 일을 수행의 하나로 삼은 스님들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그 비법이 이어지고 있다. 송화백일주와 송죽오곡주는 이름 그대로 송화가루를 넣어 빚은 술로, 깨끗한 솔잎과 누룩으로 밑술과 덧술을 담가 100일 동안 숙성하여 백일주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송화가루를 넣어 술을 빚은 지 3년이 지나서 수왕사의 샘물처럼 맑은 빛이 비로소 돌면 그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단다.
김제의 송순주(松荀酒)는 선조 때 산사의 여승으로부터 전해 받은 비방으로 술을 빚어 남편의 위장병을 낫게 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스듬히 누운 큰 소나무의 몸통을 밥통처럼 뚫어서 그 속에 술을 넣어 빚은 와송주(臥松酒)는 그 향이 이를 데가 없다. 송령주(松鈴酒)는 늦은 봄날에 채 영글기 전의 솔방울을 따다 담은 술이고, 소나무 잔가지를 넣고 빚은 술은 송절주(松節酒)이다. 동짓날 밤에 소나무의 뿌리를 넣고 빚은 술을 항아리에 담고 봉해서 소나무 밑을 파고 묻었다가 이듬해 가을에 먹는 술은 송하주(松下酒)라 하는데 이렇게 소나무에서 나는 것으로 담은 술은 중풍 예방, 이뇨, 종기를 가라앉히는데 효력이 있다고 한다.
송차(松茶)는 백제시대 보리사라는 절의 주지스님이 만든 건강음료이다. 깨끗하게 씻은 솔잎을 항아리에 넣고 물과 설탕을 함께 담아 창호지로 밀봉하여 2-3개월 동안 서늘한 곳에서 둔다. 이후 솔잎은 건져버리고 물만 따라 두고 마신다. 그윽한 솔향이 일품이지만 송차는 마시면 잠깐 동안 톡 쏘는 취기가 있다.「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고혈압․동맥경화․중풍․폐결핵․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꿀물이나 설탕물에 송화가루를 타서 먹는 송화밀수는 궁중음식으로 여름의 더위를 이기는 음료였다.
그 외에도 소나무가 죽거나 베어낸 뒤 4~5년이 지나면 소나무가 있던 땅속에서 외생균(外生菌)들과 공생한 균괴(菌塊)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복령(茯笭)이라 한다. 복령은 강장 ·이뇨 ·진정 등에 효능이 있어 예부터 귀한 약재로 쓰였고, 죽이나 떡으로도 이용되었다. 또 소나무 주변에는 버섯의 귀족, 송이(松栮)가 자라기도 한다. 이 송이는 재배가 되지 않은 천연의 버섯으로, 추석 즈음 잠깐 전골이나 구이로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고 또 1년을 애달게 한다.
이렇듯 소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궁무진하다. 환경오염과 재선충으로 몸살을 앓는 소나무... 그 소나무의 축복이 우리 후손에게도 계속되길 염원한다.

원문 보기: https://jbfood.go.kr/juhtml/story/main.html?thid=174&fpmode=view&plcode=0002000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