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음식문화 안내 › 전북 음식 이야기

벼, 쌀 그리고 밥

08.08.26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벼, 쌀 그리고 밥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무섭던 더위도 아침저녁나절의 서늘함에 기세를 잠재우려한다. 들녘에선 비바람에도 꼿꼿하게 서서 온몸으로 해를 받아 튼실한 이삭을 키운 벼가 슬슬 고개를 숙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가을걷이가 시작되겠다.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이때 아마도 농부는 뙤약볕의 수고로움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다싶다. 그래서 가을걷이가 있는 추석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나 보다. 우리 조상들은 추수한 햅쌀을 사당에 천신(薦新)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빚어 차례상에 올리며, 신도주(新稻酒)를 빚어 성묘를 하고, 달맞이의 흥겨움을 더 했다.

한반도에서는 처음 농경의 시작을 조, 피, 수수 등의 잡곡 재배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의 주곡(主穀)인 벼는 기원전 2000년경 한강 하류지역에서 벼가 재배되었음을 보여주는 탄화미가 출토되면서 부터 재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벽골제, 의림지 등 수리시설의 발달은 벼의 재배를 확대시켰고, 6세기 이후에는 벼의 재배가 완전한 정착을 이룬 것으로 생각된다.

벼의 경작이 한반도에 정착된 이후 오늘날과 같은 밥의 형태로 조리가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왜냐하면 밥을 짓기 위해선 먼저 고열로 밥물의 가열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철기시대 이후 솥의 탄생과 함께였고, 벼를 갈아 가루의 형태로 이용하던 것을 왕겨와 겨층을 깎는 도정기술이 발달되면서 쌀로 변신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쌀을 이용한 밥 짓기는 죽에서 떡으로 그리고 밥으로 조리기구의 발달과 함께 역사를 같이 한다.

한반도에서 재배되었던 벼의 품종은「금양잡록(衿陽雜錄)」에 27종, 「산림경제(山林經濟)」에 37종,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무려 68종이 기록되어 있어 과학적인 영농법의 육성이 장려되었던 조선의 위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다양한 벼의 품종만큼이나 밥 짓는 기술의 발달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중국 청나라 장영(張英)은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에서 “조선 사람들은 밥 짓기를 잘 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솥 안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 밥을 지을 때 불은 약한 것이 좋고 물은 적어야 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다. 아무렇게나 밥을 짓는 것은 하늘이 주신 것을 낭비하는 꼴이 된다.”고 하였다. 「옹희잡지(甕凞雜誌)」에는 “우선 쌀을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물을 손등에 닿을 정도로 붓는다. 진밥을 하려면 밥이 익을 때 쯤 일단 불을 물렸다가 다시 지피면 되고 된밥으로 지으려면 뭉근한 불로 계속 때어야 한다.”고 하여 진밥과 된밥의 밥 짓기의 요령이 설명되어 있다. 또「임원십육지」에는 “남쪽사람은 쌀밥을 잘 짓고, 북쪽사람은 조밥을 잘 짓는다.”고 하여 조선시대 지역에 따라 주곡의 차이가 있었고, “솥뚜껑이 비뚤어져 있으면 김이 새서 밥맛이 없을뿐더러 땔감도 많이 들고 밥이 반만 익고 반은 선다.”고 하여 애써 지은 밥이 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밥을 짓는 그릇은 곱돌솥이 으뜸이고, 오지탕관은 그 다음이요, 무쇠솥은 셋째이며, 통노구는 하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밥을 짓는 솥에 따라 달라지는 밥맛의 차이를 숙지하고, 맛있는 밥 짓기를 위한 솥을 구분하고 있을 정도로 밥맛에 대한 안목이 높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밥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진 우리 민족에게 밥은 주식(主食)이면서 에너지원 이상의 신령스러운 의미를 지닌 식품이기도 하다. 밥은 끼니, 진지, 수라, 메 등 때와 신분에 따른 다양한 언어로 구사되어온 것으로도 설명이 된다. 순산을 비는 삼신상의 흰쌀과 순산 후 올리는 첫국밥의 흰쌀밥, 평생의 식복(食福)을 빌며 올리는 돌상의 흰쌀, 사잣밥에 놓여지는 마지막 밥 세 그릇 ... 모두 간절한 축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밥이 하늘’, ‘밥이 보약’, ‘밥이 덕지덕지 붙었다.’ 등의 속담으로도 밥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민족의 정서를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부엌에서 밥을 풀 때 주걱을 대문의 반대쪽으로 퍼서 행여 집안의 복이 나가는 것을 막았으며, 밥을 뜨는 수저의 모양새나 태도가 불손할 때 복이 달아난다고 어른들의 걱정을 들을 만큼 밥은 우리민족에게 복록(福祿)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식구(食口)’ 또는 ‘한솥밥을 먹는 사람’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나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밥이 공동체적 결속을 다지는 구심점이 됨을 표현한다.

상차림사진

2007 전주대 전통음식문화전공 졸업작품

우리에겐 엄청난 양의 밥으로 허기를 채웠던, 채우기를 갈망했던 과거가 있었다.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은 음식 중의 하나로, 다른 곡류에 비해 단백가가 높고, 지방의 함량이 낮으며, 함유된 영양소의 양과 질이 비교적 우수한 편이다. 또한 단맛이 있고, 소화가 잘되며 체내 흡수율이 높은 장점으로 반만년의 역사에서 우리민족의 몸과 마음을 살찌웠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나라는 쌀의 소비가 줄어 소비를 촉진하려는 공익광고까지 등장을 하고 있다. 건강한 삶을 염원하는 열망이 과거 꿈이자 희망이었던 쌀을 멀리해야할 백색식품에 포함시켜 적군으로까지 인식시키고 있다. 성인 한사람이 1년에 100kg 이하의 쌀을 소비하면 성인병의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보고되어 있으나, 우리는 1990년대 후반 이미 이를 밑돌기 시작하여 현재 94-97kg 선을 맴돌고 있는 시점이 되었다. 그러니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50년만 되돌려 생각하면 우리의 쌀에 대한 대접이 아니 괄시가 이래도 되나 싶다.

원문 보기: https://jbfood.go.kr/juhtml/story/main.html?thid=181&fpmode=view&plcode=0002000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