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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기다림의 미학, 김치

08.11.25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조화와 기다림의 미학, 김치

어머니들의 요즘의 인사는 “김장하셨어요?”다. 예나 지금이나 부엌살림의 최대 숙원과제는 장 담그기와 김장하기이다. 노란 속이 꽉 들어간 배추를 안아다 소금에 푹 절이고, 감칠맛 나는 젓갈에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튼실하게 자란 고추며, 무, 마늘, 파, 생강, 갓, 미나리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 쓱쓱 치대어 항아리에 가득 담으면 한겨울 동장군(冬將軍)도 무섭지 않다.

김장을 담그는 풍속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고려시대 이규보는 「가포육영(家圃六詠)」에서 “담근 장아찌는 여름철에 먹기 좋고/소금에 절인 김치 겨울 내내 반찬 되네/뿌리는 땅속에서 자꾸만 커가니/서리 맞은 무 칼로 베어 먹으니 배같이 달구나” 하여 이 맘 때의 김장담그기와 시원한 무의 단맛을 노래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0월조에는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立冬)소설(小雪) 절기로다/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듣거라 아이들아 농공을 필하도다/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마저 하세/무 배추 캐어들어 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박, 무, 알밤도 얼지 않게 간수하소” 하여 구체적으로 겨울을 대비한 김장과 채소보관 방법을 스케치하고 있다.

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0월 월내(月內)에는 “서울 풍속에는 무, 배추, 마늘, 고추, 소금 등으로 독에 김장을 한다. 여름의 장 담그기와 겨울의 김장 담그기는 인가(人家)의 일년의 중요한 계획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요리제법」에는 “김치 만드는 법”을 ‘김장김치’와 ‘보통 때 먹는 김치’로 구분하여 기록되어 있다. 즉 김장 풍습은 김치를 담글 때 채소를 단순히 소금에 절이는 형태를 벗어나면서 소금의 양을 줄이고, 대신 가식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버무린 김치를 독에 넣어 돌로 누르고 밀봉하여 땅에 묻어 숙성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漬)․저(菹)․침채(沈菜)’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상고시대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김치의 재료로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것은 순무․가지․외 ․동아 등으로 오늘날과 같은 배추가 아니었다. 담금 법은 장아찌형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신건지 짠지형, 나박김치 동침이형, 섞박지 소박이형의 순이었고, 양념으로는 소금, 천초와 생강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중기 이후 고추와 젓갈이 양념으로 쓰이기 시작하였고, 반결구배추와 결구배추의 유입 후 김치의 주재료는 배추가 되었다. 김치를 담그는 방법도 1차 소금 절임을 한 배추에 마늘․파․생강․고춧가루․젓갈 등을 넣은 양념으로 2차 버무리는 양념김치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김치에서 젓갈은 1800년대 초엽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고춧가루와 실고추는 젓갈의 비린내를 억제하여 김치에서 젓갈의 사용량을 늘리는 역할을 했고, 고춧가루는 김치에 사용되는 소금의 양을 줄여 짠맛을 낮추는 효과를 주기도 하였다. 즉 고추와 젓갈의 사용으로 짠지류의 형태에서 김치류로, 결구배추의 사용으로 포기김치의 형태로 김치는 재탄생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배추통김치는 19세기 말엽으로 추정되는 「시의전서」에서 처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전의 배추는 없었을까? 중국에서는 11세기에 반결구배추가 재배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시습의 「매월당집(梅月堂集)」에서 ‘살찐 배추’가 나와 15세기 반결구형의 배추가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중종(中宗)과 선조(宣祖)실록에 중국으로부터 배추의 종자를 애써 들여오는 기록으로 보아 1800년대 초엽까지 독자적인 반결구배추를 갖추지 못하고 종자를 수입하여 재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06년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특유의 개성배추가 등장하는데, 이 배추는 감미가 있고 맛이 좋고 잎이 커서 개성의 보쌈김치의 시작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원예모범장(1906)」이나「조선산업지(1910)」에는 개성배추의 채종법이 기록되어 있다. 1910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완전 결구배추를 도입, 재배시험을 거쳐 보급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배추김치의 주재료가 되었다.

배추와 함께 중국에서 도입한 화북계통의 무에서 분화된 작은 무는 뿌리가 작고 단단하며 끝에 알이 달린다고 하여 알달이라 불리며, 이는 잎과 뿌리가 함께 총각김치가 되었다.

김치을 완성시키는 배추의 파트너는 고추이다. 고추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재미있다. 「지봉유설(1613)」에 “남만초(南蠻椒)는 큰 독이 있는데, 처음 일본(倭國)에서 건너왔다 하여 속칭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렀다. 지금도 이것을 심는데 술집에서는 그 매움을 이용하여 간혹 소주에 타서 이를 장에 내가판다. 이를 마신 자 중에 죽은 자가 많았다.”라고 최초로 고추가 기록되어 있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었으나 약 1세기 지난 「산림경제」에 처음으로 고추의 재배법이 기록되어있다. 고추는 그 도입과 매운맛 때문에 왜초(倭草), 만초(蠻椒), 남초(南椒), 고초(苦椒, 苦草)라 불리었다. 천초의 오랜 식용 역사를 가지며 뒤이은 후추로 매운 맛에 익숙했던 조선인은 18세기 후반부터 고추를 생으로 또는 말려서 상용하여 식탁에 빨간 혁명을 일으켰다. 고추가 일으킨 대변신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김치이다. 고추를 이용한 김치는 「증보산림경제」에서 오이김치(黃瓜淡菹法, 黃瓜醎菹法)로 등장 한다.

김치는 이제 우리의 식탁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전 선수가 먹는 식단에 김치가 채택되며 국제적인 식품으로 공인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05년에는 「Health」 지에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그 영양과 기능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한국전통음식의 섞음과 조화, 기다림의 미학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김치인 것이다.

김치사진

원문 보기: https://jbfood.go.kr/juhtml/story/main.html?thid=187&fpmode=view&plcode=0002000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