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의 주인공, 떡국
08.12.31 차경희(전주대 전통음식문화전공)
세찬의 주인공, 떡국
새해가 다가오니 어른아이 모두 다 좋은 설날이 코앞이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는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어릴 적 따라 불렀던 노래가 입에서 맴돈다.
설날은 일년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한자어로 원단(元旦), 세수(歲首), 년수(年首)라 하고, ‘삼가하다, 낯설다, 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새로운 해에 대한 익숙치 않은 낯설음과, 일년 동안의 무탈을 빌며 행동거지를 삼가고 조심하라는 경고가 담긴다. 또 어떤 일의 시작, 개시의 의미를 모아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을 가리킨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설에는 차례를 지내고, 남녀 보두 새옷을 갈아입고 입는데 이것을 세장(歲粧), 우리말로는 설빔을 입는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이날의 시절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이때의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최식(崔寔)의 「월령(月令)」에는 “설날 조상에게 깨끗한 제사를 올리고, 초백주(椒栢酒)를 마신다.”라고 하였고, 종늠(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世時記)」에는 설날 도소주(屠蘇酒)와 교아당(膠牙錫)을 올린다고 하였다.” 도소주는 중국 후한(後漢)시대 화타(華陀)가 만들었다고도 하고, 당나라 손사막이 만들었다고도 전해지는 술로 산초, 방풍, 백출, 밀감껍질, 육계피 등을 섞어 만든다. 이 술을 마시면 일년 동안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장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교아당은 이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엿으로 ‘이굳히엿’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이 세주와 세찬의 시초이다.
세찬에는 떡국,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나박김치와 장김치를 새롭게 담근 햇김치 등이 있다. 새해 설날에는 반드시 떡국을 먹었기 때문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이를 물어볼 때 떡국을 몇 그릇째 먹었냐고 하기도 한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는 흰색의 음식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여 천지만물의 부활과 신생을 염원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떡국(餠湯)은 제사에도 쓰고, 손님 대접에도 사용하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긴 가래떡처럼 길게 오래오래 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 서유구(徐有榘)의「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떡국 만드는 법(造湯餠方)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멥쌀을 곱게 찧어서 양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맑은 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물을 걸러내고 약간 햇볕을 쬐였다가 물기가 마르면, 쇠공이로 빻아서 가루로 하여 고운체로 친다. 시루에 올려서 찐 뒤 익힌 것을 안반 위에 놓고, 한 사람은 머리가 넓고 가로로 자루가 달린 떡메로 치고, 또 한 사람은 안반 옆에 앉아서 따뜻한 물 한바가지를 앞에 놓아두고서 매번 칠 때마다 손에 물을 묻혔다 떡을 축이는데, 한 번 치면 한 번 축이고 반복해서 뒤집어 주며 찰기 있고 윤기가 나도록 친다. 사발로 큰 덩어리를 떼어 안반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비비고 주물러 도끼자루처럼 둥글고 길쭉하게 만든다. 다시 칼로 8~9치(24~27cm) 길이로 잘라 위를 가지런히 짧은 가닥으로 만든다. 참기름을 발라서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하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 서늘한 곳에 두어 딱딱하게 굳도록 한다. 손님 1인분을 대접하려면 2~3가닥을 가져다 잘 드는 칼로 가로로 잘라 얇게 써는데 그 얇기가 종이와 같고 그 둥글기는 동전과 같다. 먼저 쇠고기나 꿩고기를 장과 참기름에 오랫동안 버무려 두었다가 같이 장수(醬水)를 솥에 부어 삶는데, 많이 끓으면 잘라 두었던 떡을 가져다가 솥 안에 넣는다. 참기름을 넣고 다시 끓여 국물이 고루 섞이게 되면, 깨끗한 그릇에 담는다. 여기에 후춧가루와 꿩고기 삶아 다진 것을 위에 얹는다.”고 하였다.
떡국을 끓이기 전 미리 국물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요즈음은 양지머리나 사골 고은 곰국물이 일반적이지만 옛날에는 쇠고기나 꿩고기로 맛을 냈는데 꿩고기가 없을 때는 닭고기로 대신하여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맛있게 우러난 장국물이 마련되면 먼저 솥에 넣고 끓이다가 흰떡을 넣어 한소끔 끓이는데 떡이 떠오르면 간을 하고 그릇에 담고 고명을 올린다. 고명은 국물을 낼 때 삶아놓은 고기를 찢어 양념을 하여 올리기도 하고, 살코기를 곱게 다진 후 양념하여 볶아서 올리기도 하고, 쇠고기와 움파를 번갈아 고지에 끼워 구이를 한 산적을 올리기도 한다. 여기에 달걀 황백지단까지 올라가면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는다.
떡국은 지방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다. 가래떡의 굵기를 굵게 하여 동전모양으로 동글동글하게 썰기도 하고, 약간 갸름하게 썰어 타원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 어린이 손가락 굵기로 가늘게 비벼서 만드는 개성지방의 조랭이떡국도 있다. 조롱박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누에고치모양을 닮기도 하여 누에가 실을 줄줄 뽑아내는 것처럼 한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라는 의미도 더하고 있다. 또 여기에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이 망국의 아픔을 겪으며, 고려를 배반하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한 원한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상도지방에서는 고깃국 대신 싱싱한 굴을 넣어 시원한 맛을 내는 떡국을 만들고, 충청도에서는 으깬 두부와 매콤한 양념을 것을 한 숟가락씩 넣어 먹기도 한다. 논농사가 많아 쌀의 생산이 풍족했던 남부지방에 비해 밭농사로 잡곡의 생산이 많았던 북부지방은 세찬으로 떡국 대신 만둣국을 즐긴다. 만두는 원래 중국에서 대륙을 통해 이북지방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그래서 유달리 평안도나 함경도 지역에서는 크게 빚어 마음까지 넉넉한 만두를 즐겨먹고, 설날에도 이것을 즐긴다. 필자에게는 음식에 관심이 많은 지리학을 전공한 지인이 있다. 그분은 문화지리를 연구하고 계신데 본인은 설날의 세시음식으로 한반도의 지역을 나눈다는 것이다. 얘기인 즉 설날에 떡국을 주로 먹는 남부지방, 만둣국을 주로 먹는 북부지방, 떡만둣국을 주로 먹는 중부지방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음식을 매개체로 한 지역의 구분은 참으로 이해가 쉽고, 재미도 있다고 동조해 주었던 생각이 난다. 따끈따끈하고 쫄깃한 떡국, 빨리 먹고 싶어진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식품의 저장시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의 참외, 수박, 포도, 가을철의 밤, 대추, 능금, 겨울철의 유자, 감자가 총망라되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나 논픽션의 소설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저자가 알고 있는 또는 먹고 싶은 과일을 모두 열거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실제 「춘향전」에는 용안(longan)이나 여지(litchi)같은 수입과일도 등장하고 있다. 그 외 10여종의 술과 눈이 즐거운 가지각색의 술병이 7종류나 된다. 이 모든 것이 국화무늬 새겨진 통영반(統營盤) 위에 망라되어 있으니, 솜씨 좋은 안주를 포함한 식기류의 호사가 눈에 선하다. 거기에 추월이의 섬섬옥수 고운손이 앵무잔에 졸졸 퐁퐁 술을 가득 부어주니 이춘풍의 애간장을 어찌 녹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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