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편과 전약
09.01.23 차경희(전주대 전통음식문화전공)
족편과 전약
야들야들 미끌미끌... 젓가락으로 집기는 어려워도 일단 입 안에서 들어오면 독특한 맛과 감촉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묵이다. 묵에는 가장 친숙한 도토리묵이나 메밀묵, 봄철의 별미 청포묵, 여기에 동부묵이나 올방개묵도 있다.
도토리, 메밀, 녹두, 동부, 올방개는 모두 식물성재료이지만 동물성의 재료로 만든 묵도 있다. 족편(足片)이나 전약(煎藥)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은 참 보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큰 잔치가 있을 때 의례 소나 돼지를 한마리씩 잡았다. 그러면 고기 뿐만 아니라 여러 부산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음식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로 족편도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족편은 쇠머리나 쇠족 등을 장시간 고아서 응고시켜 썬 것인데 고기조각이나, 달걀지단, 석이버섯 등의 재료가 들어가 응고가 되면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든다. 이것은 흡사 서양에서 소시지를 만들 때 돼지의 위나 방광에 돼지의 각 부위의 살코기나 내장, 선지가 들어가 여러 가지의 색과 모양을 내는 것처럼 먹는 사람에게 시각의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이것을 초장에 찍어 먹으면 야들야들하고 꼬들꼬들하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럼, 족편을 만들어 보자. 쇠족은 털을 깎아내고 깨끗하게 씻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다. 솥에 물을 올려 끓으면 쇠족을 넣어 한소끔 삶아낸 후 흐르는 물에 다시 깨끗하게 씻는다. 솥에 새물을 붓고 다시 끓으면 쇠족, 생강, 파, 마늘을 넣고 약한 불에서 거품을 걷어가며 푹 끓인다. 쇠족이 반쯤 물러지면 사태를 함께 넣고 끓인다. 쇠족의 골수가 쉽게 빠지면 고기는 건져서 곱게 다지고, 국물은 체에 받혀서 식힌 후 기름기를 걷는다. 채 썬 표고와 석이버섯을 참기름과 소금을 넣어 살짝 볶아내고, 달걀을 황백으로 나누어 지단을 부친 후 곱게 채를 썰어둔다. 실고추도 짧게 잘라 고명으로 준비해둔다. 솥에 맑아진 고기국물과 다져둔 고기를 넣고 간을 하여 다시 한소끔 끓인 후 네모진 쟁반에 부어 식힌다. 여기에 표고, 석이, 지단, 실고추 고명을 고루 얹어 굳힌다. 다 굳으면 4×5×1cm의 크기로 썰어 초장이나 겨자장을 함께 낸다.
쇠머리나 쇠족에는 고기보다 힘줄부위가 많다. 그 힘줄부위에는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이 많은데 이것은 장시간 열을 가하게 되면 젤라틴이라는 형태로 바뀐다. 이것은 겔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젤라틴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서양음식의 디저트 제조에 많이 이용된다. 족편은 들어가는 부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의 족편이 만들어진다. 쇠족에 꿩고기를 넣은 용봉족편(龍鳳足片), 양(羊)의 정강이로 만든 양행교방(羊䯒膠方), 돼지껍질로 만든 저피수정회법(豬皮水晶膾法) 등을 고조리서(古調理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궁중의 연회에도 수차례 올려진 음식으로 「진연의궤」에는 쇠족에 꿩고기를 함께 넣어 푹 곤 다음 굳혀서 반듯반듯하게 떡모양으로 썬 ‘족병(足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족편과 비슷한 형태이나, 약재를 더 넣어 만든 전약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11월의 절식(節食)으로 궁중의 내의원(內醫院)에서 동지가 되면 정성껏 만들어 임금에게 올렸다고 하였다. 전약을 먹어 추위에 몸을 보하고,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전약은 먼저 쇠족을 토막 내어 솔로 깨끗하게 씻은 후 물에 담가 피를 빼고, 쇠머리가죽도 깨끗이 씻는다. 씻어둔 쇠족과 쇠머리 가죽을 끓는 물에 넣어 한소끔 끓어오르면 건져 깨끗하게 씻는다. 이것을 다시 솥에 넣고 정향과 생강, 통후추를 넣은 후 새물을 부어 고기가 허물허물해지고 뼈가 분리될 정도로 5-6시간정도 삶는다. 고기가 다 삶아지면 다른 그릇에 쏟아 정향, 생강, 통후추를 골라내고 뼈를 추린다. 국물은 체에 받힌 후 다른 그릇에 담아두고, 고기는 핏줄이나 지저분한 것을 떼어내고 다진다. 대추는 물을 붓고 푹 고아 체에 넣고 주걱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내려 대추고를 만들어둔다. 쇠족 삶은 국물과 다진 고기에 대추고, 계핏가루, 후춧가루, 꿀을 함께 넣어 한참 끓인 후 네모난 그릇에 쏟아 잣을 뿌린 후 굳혀서 썰어 먹는다. 그런데 이 전약은 조선후기 때부터 전해오는 방법이고, 그 이전엔 조금 달랐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아교 1말 3되를 녹이고, 관계(官桂) 6포, 건강(乾薑) 1량, 후추(胡椒) 5돈, 정향(丁香) 3돈을 곱게 가루내고, 대추살 8홉을 쪄서 체에 걸러, 꿀 1말을 함께 넣고 오래 끓여서 족편처럼 굳힌 것이다.”라 하였다. 「보한재집(保閑齋集)」에는 “전약이란 우유(牛乳)에다 생강, 정향, 계심(桂心), 청밀(淸蜜)을 섞어 고약처럼 고아서 먹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중추 팔관회의 진찬으로 삼았으나, 조선시대에는 내의원에서 이것을 만들어 동지의 절식으로 근신(近臣)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우유가 부족할 때는 마유(馬乳)로 대용하였다.”고 하였다. 「시의전서」에는 “녹각교(鹿角膠)나 좋은 아교 1말반을 붓고, 대추 1말을 고아 건강 3냥, 후추 6돈, 정향 3돈 가량을 가루 내어 고루 섞어서 잠깐 끓여 떠내어 보아 엉기거든 그릇에 식혀서 썬다.”고 하였다. 이 전약은 1800년대 궁중의 의궤에 5회나 기록되어 중요한 음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자취가 사라지고 있다. 삶의 멋과 맛이 녹아 있는 족편과 전약같은 우리의 음식이 다시 부활될 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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